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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부활

이름 : 손석춘 ( )

날짜 : 2004-06-08 오전 9:54:16

노무현의 부활

부활. 새길수록 뜻깊은 말이다. 나사렛 예수의 숭고한 부활만이 아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인간성의 지평을 넓혔다. 거듭나기란 기실 모든 종교의 고갱이다. 어찌 종교만이겠는가. 검푸른 숲의 여린 풀꽃도 씨앗을 묻어 새 봄을 꿈꾼다. 더구나 우리 겨레에겐 이를 나위 없다. 건국신화를 보라. ‘동굴의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얻지 않던가.
그래서였다. 노무현 정권에 부활을 촉구했던 까닭은. 출범 1년을 ‘우왕좌왕’해서였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노 대통령에게 탄핵이 바로 그랬다. 탄핵 공간, 그 죽음의 시간을 부활의 공간, 거듭나는 시간으로 삼아야 했다. 뜬금없이 마거릿 대처의 전기를 읽는다고 했을 때, 굳이 비판한 까닭이다.

예상했듯이 탄핵은 민중의 힘으로 기각됐다. 노 대통령도 복귀했다. 엊그제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외교단 다과회’에서 대통령 스스로 말했다. “부활은 예수만 하시는 것인데, 한국의 대통령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여러분들께 보여 드렸다.” 물론, 우스개였다. 100여명의 외교단도 웃으며 박수를 보냈단다. 한나라당 대변인이, 그리고 <조선일보> 사설이 “예수 부활” 운운하며 엄숙하게 부른 ‘합창’이 실소를 머금게 한 까닭도 여기 있다.

하지만 녹지원 연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평소에도 행동의 자유가 없지만 탄핵심판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청와대에서 완전히 연금, 유폐당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말도 짚고 싶지만 넘어가자. 문제는 다음이다. “버티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 녹지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 등 환경 덕분이었다.” 녹지원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과연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신비로운 힘”이 녹지원에 있을까.

말꼬집기가 아니다. 무릇 말에는 우스개든 ‘수사’든 마음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여러 나라 외교관 앞이었다. 녹지원처럼 눈부신 겨레의 성숙한 민주의식이 부활의 힘이었다고 강조해야 옳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 앞에서 “한국 국민들의 공통된 목표는 우리가 남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남에게 손해를 끼지 않고,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 첫번째”라고 말했다. 답답함을 넘어 울뚝밸이 치민다.

대통령의 ‘이상한 발언’은 다음날 국가유공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한결 도드라진다. “파병을 했다고 반드시 미국에 굴종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이라크라든지 아랍세계와 적대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무슨 말인가. 말살에 쇠살은 현충일 추념사로 이어진다. “자주와 동맹의 이분법적 논란을 넘어서야 한다”는 데는 공감할 수 있다. “더이상 동북아 정세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변방의 나라는 아니다”는 선언은 사뭇 상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이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생뚱맞다. 그가 밝힌 대로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선열들의 영전에 결코 부끄럽지 않는 나라”를 만들려면, 그리고 “불행했던 변방의 역사는 우리 세대로 끝”을 내려면, 지금 할 일은 명쾌하다. 파병 철회다. 다만, 그 방법을 찾을 때다.

그렇다. 찬찬히 과거를 톺아보기 바란다. ‘노무현 바람’이 솔솔 불 때, 이미 ‘노무현’은 개인이 아님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가 녹지원에서 힘을 얻을 때, 서울 광화문의 찬바닥에서 촛불을 밝힌 민중의 기대도 마찬가지였다. 탄핵이 기각된 뒤 노무현이 참신한 개각과 개혁의지로 부활하길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가. 탄핵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준 민중 앞에 다시 실망을 주려는가. “노무현 대통령을 한나라당 홍보위원장에 임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가의 우스개가 서글프지 않은가.

노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말했다. “나는 짧은 기간 동안 중요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뽑혔다. 곧 사라져버릴 영향력을 쥐고 있는 것이다.” 재·보선 참패에 말로만 자성할 때가 아니다. 의미를 축소할 때는 더욱 아니다. 아직 4년이나 남았다. 하지만 ‘중요한 직무’를 생각하면 짧다. 사라져버릴 권력 앞에 겸허하라. 거듭나라.

손석춘 논설위원songil@hani.co.kr

<한겨레> 6월 8일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