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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맞고 깨물리는 교사

이름 : 이현주 ( )

날짜 : 2003-01-08 오전 12:06:33

뺨맞고 깨물리는 교사

이현주 (서울정문학교 교사)

장애인 특수학교 교사인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수요일 학교가 아닌 밖으로 사회 적응 활동을 나갑니다. 오늘은 101-1번 버스를 타고 신림역에 내려 다시 지하철로 바꿔 타고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다녀왔습니다. 갈아타는 합정역에서 과자와 음료수도 사 먹었지요. 아이들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 타는 동안 간단히 자판기를 찾거나 매점을 다녀오는 데도 무척 기다리는 표정입니다. 가정에선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부모님을 탓하기도 힘든 것이 대부분 맞벌이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만 여가 시간에 텔레비전만 보았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특수교사로서는 꽤 속이 상합니다.

매주 사회 적응 활동을 나갈 수 있는 것은 수업 개선 연구교사를 맡게 되어 학교 쪽에 당당히 보조교사를 요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여 명의 학생을 담임 혼자 데리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훈련을 하기에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자원봉사자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학교가 구석진 곳에 있어선지 관련학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힘이 듭니다. 오늘은 공개 수업 준비로 비디오 촬영을 시작해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보조자가 오지 않아서 담임 둘과 촬영자, 21명의 학생들이 길을 나섰습니다. 모험이라면 모험입니다. 아무리 학교에선 수준 높은 학생들이라 평가하지만 밖에서 어떤 돌발적인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예상대로 사건이 여럿 있었습니다만 학생들의 행동을 학기 초와 비교해 보니 일주일에 한 번밖에 안 하는데도 버스카드 판독기에 대기, 지하철역 무임 승차권 구입하기, 개찰구 통과하기, 안내표지판에 관심 갖기, 줄서기, 노약자석은 비워두기 등을 잘하더군요. 보면서 가슴에 뿌듯함이 밀려왔지요.

그러나 지하철 안에서 한 아이가 자꾸 다른 승객의 손을 잡으려 해서 그 아이를 막느라 땀을 좀 쏟았습니다. 왜냐면 그 학생은 그렇게 손을 잡으면 바로 입으로 가져가 꽉 깨물거든요. 물론 담임교사라고 봐주진 않습니다만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지니 제가 막아설 수밖에 없지요. 옆반 담임은 오는 길에 그 반 학생에게 얼굴을 맞아서 귀에서 ‘윙’소리가 들린다네요…. 속으론 무서워 덜덜 떨면서도 짐짓 학생을 제 통제권 안에 두기 위해서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었더니 긴장을 계속해서인지 아이들 하교 후엔 온몸이 몸살난 것처럼 흐느적거렸습니다.

사회 적응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습니다. 동네의 여러 은행을 찾아 은행 내부의 모습과 창구, 자동화기계 등을 살펴보았는데, 장애인의 날이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는데도, 한 은행에선 미리 양해를 구할 때는 괜찮다 하더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선 안 된다고 하여 속상했습니다.

회수권보다는 졸업 후에도 이용해야 하는 교통 카드의 사용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일반용 교통카드를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일일이 학생요금으로 찍어주시기가 귀찮은지 몇몇 운전기사들은 못 들은 척 일반요금으로 찍어주고, 또 두 학급 학생들이 천천히 차에 오르니 배차 시간 때문이겠지만 화를 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분 평생에 장애인들이 무리를 지어 그 차를 탈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어서 ‘그런 기회에 웃으면서 대해 주면 정말 좋은 일 하는 건데’하는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잠실역에 내려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음료수와 감자 몇 개만 시켜서 아이들과 먹으려고 하는데 한 아주머님이 오셔서는 아이들 콜라라도 사주라면서 돈을 쥐어주곤 가버렸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의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 만큼 그렇게 불쌍한 처지가 아닌데 말이죠. 수재의연금으로 내려다, 그래도 주신 분 뜻이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노래방이라도 가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교사가 착복(?)하는 것으로 오해하더군요.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노래방을 좋아하는데요. 게다가 졸업 후 취업해서 유행하는 노래 한 곡 정도는 부를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생들에게 지갑을 가지고 다니게 하였는데 사용한 경험이 없어서 좋아라 자랑은 하면서도 어떤 칸에 어떤 물건을 넣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댑니다.

힘들어도 다음주에도 또 나가렵니다. 제발 바라는 것은 길에서 우르르 지나가는 장애인을 보면 지나치게 뚫어지게 바라보지 말고 그냥 편안한 눈길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신 지체 장애인은 지체 부자유자가 아닙니다. 자리도 양보하지 말고요. 우리 학생들도 패기 넘치는 청춘인데 노약자석에 자연스럽게 가서 앉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습니다. 그리고 불쌍하다면서 공짜로 음식 주지 마십시오. 당연한 줄 압니다. 장애인이 모두 거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세요. 어려운 이차함수는 못 풀어도 기본적인 예의 범절, 규칙은 배울 수 있답니다. (월간 말 2002년 11월호에서 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