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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박정하 ( ) |
날짜 : 2002-08-15 오전 12:13:40 |
조회 : 1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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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석하길 출석하듯 하는 아이들
박정하 부천실업고등학교 교사
3학년 담임이다. 총원 13명. 교사 1인에게 주어지는 학급 총원이 이 정도라면 정말 해볼 만하다. 게다가 우리 학교에서 3학년은 다른 학년에 비해 지도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전교생이 1백 명 안팎인 이 작은 학교에서 2년 가까이 부대끼다 보면 한 식구처럼 서로가 너무나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친밀감 때문일까. 3학년 아이들은 교사에 대한 신뢰감이 높고 교사들 또한 담임을 맡지 않더라도 손때 묻은 3학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러나 3학년, 13명이라는 최상의 인원을 맡고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던 것은 바로 경민이라는 아이 때문이었다. 가끔 땡땡이를 쳐도 무심히 지나쳐 버릴 만큼 눈에 띄지 않는 내성적인 아이. 사실 난 이런 아이들과 의사소통하는 데는 영 젬병이다. 박경민. 이놈하고 어떻게 1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아무튼 내가 맡은 총 13명의 아이들 명단을 놓고 제일 고심한 대상이다.
경민이는 개학하고 바로 다음 날 조용히(?) ‘땡땡이’를 쳤다. 며칠 후 다시 무단 결석. 전화를 걸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나에 비해 경민이는 솔직했다.
“어제 결석한 건 학교에 정말 가기 싫어서고요. 오늘은 진짠데, 친구가 저녁에 하는 아르바이트를 도와 달래서…. 한 번만 허락해 주세요. 앞으로는 결석 안 할게요.”
경민이의 솔직함에 나는 그동안 그 아이를 향해 주저주저했던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했다. 그리고 경민이가 약속을 지키리라는 믿음에 결석을 허락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경민이의 무단 결석은 그 후에도 습관적으로 반복되었다. 3월이 끝나갈 무렵 인내심의 한계에 이른 나는 경민이를 상담실로 불렀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 아이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한참 동안 일방적으로 열변을 토하였다. 경민이는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다.
“제가 결석 안 한다고 한 건 선생님이 은근히 그렇게 말하길 강요하는 분위기여서…. 그리고 학교 오는 거 정말 재미없고, 오기 싫을 때가 많아요.”
순간 속은 기분도 들고 더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내가 정말 은근히 강요했나’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천천히 털어놓았다.
“경민아, 한 달에 3분의 1 가까이 학교에 안 나오는데 어떻게 학교생활이 즐거울 수 있니? 넌 언제까지 그렇게 들러리처럼 생활할래? 니가 얼마 남지 않은 학교생활에서 한 가지라도 의미를 찾았으면 해.”
경민이는 상담이 끝난 뒤 생각을 정리하겠다면서 조퇴를 했다. 다음 날 또 속은 건 아닌지, 경민이가 정말 나타날지 생각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교무실 문 밖을 주시하는데 아이들 틈으로 경민이가 휙 지나간다. 그날의 부딪힘 이후 우리 둘 사이의 간격은 지난 2년에 비해 많이 좁아진 느낌이었다.
우리 반에는 아이들이 매일 쓰는 작은 일기장이 있다. 아이들 대부분이 낮에 직장을 다니고 학교에 오자마자 밤 9시 30분까지 수업을 받아야 하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여유 있게 얼굴을 맞댈 시간이 없다. 그래서 만든 것이 작은 일기장. 아이들이 틈틈이 쓰는 이 작은 일기장을 통해 아이들과 난 하루에 한 번씩 만난다. 처음에 아무것도 안 적던 경민이가 언제부턴가 잘해 보려는 의욕이 엿보이는 짧은 글들을 꼬박꼬박 써나갔다.
2002. 3. 19 | 오늘은 기계실습을 했다. 어려웠지만 할 만하고 재미있었다. 학교 3일째 결석 안 했다.
2002. 4. 20 | 요즘 날씨가 더워서 일할 때 짜증 나고 땀도 많이 난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겠다.
2002. 4. 24 | 학교 다니는 게 조금씩 재미있어진다. 내일도 학교생활 재밌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02. 4. 30 | 내일은 노동절이다. 학교에서 노동절 행사를 한다. 떡 많이 먹어야지. ^^
경민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나의 몇 마디에 아이가 갑자기 변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통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민이와 나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주시하기 시작했다. 경민이는 선생님의 관심을 느끼기 시작했고, 나는 경민이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이 아이가 무수한 몸짓으로 내게 다가온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전에 이 아이와 제대로 된 소통을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반응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나의 조급함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아이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고 미리 포기한 것이다. 아이들의 수동성을 핑계 삼아 쉽게 무관심해지고 아이들을 내 방식대로 대상화시켜온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끊임없이 반응하고 요구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단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아이가 표현하지 못했을 뿐.
나와 다른 남과 소통하는데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또한 기꺼이 자기 것을 버리고 배운다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제 193 호 2002 년 7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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