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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붕어를 굽는 이유

열살박이 딸을 둔 강모씨(43. 남)는 아침 겸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10시쯤 집을 나선다. 어제는 완전히 허탕을 쳤다. 오늘은 아파트 단지 근처로 이동할 참이다.

강씨가 노점상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다. 2년 전 노점을 정리하고 신발 유통업에 손을 댔지만 3개월 전에 빚만 잔뜩 떠안은 채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붕어빵 장사를 택한 그는 “예전보다 노점상, 특히 붕어빵 장사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붕어빵 굽는 기계와 재료들은 체인점에서 대주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다”며 한철 장사로써 붕어빵 노점이 늘어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회사에서 한창 뛰고 있어야 할 젊은이들이 붕어를 굽고 있는 것을 많이 목격한다고. 같은 길목에서 붕어빵이 아닌 다른 노점이 있으면 나눠먹기 장사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수입도 예전같지 않으며 하루 벌고 하루 먹는 생활에 그친다.

그렇다고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도 강씨에겐 벅차다. 웬만한 직장에는 나이 때문에 이력서조차 내밀지 못하며 더군다나 일자리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노점상 이외에 그에게 딱히 떠오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고수익을 올리는 노점상이 가끔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만 그것은 아주 극소수의 경우다”며 노점상의 열악한 환경을 토로했다. 그 예로 그는 구청의 단속을 들었다.

붕어빵과 함께 오뎅 장사도 함께하는 그의 노점은 조그만 트럭이다. 처음에는 경고로 끝나지만 다음에 적발되면 25만원의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 주의를 받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되지만 리어카로 장사를 하는 경우는 아예 그 자리에서 압류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풀어줄 때는 풀어달라. 노점을 없앨려고 하면 나 같은 사람은 어찌 살라고. 경제가 어렵고 실업자가 많이 생기면 정부도 노점상 단속을 절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노점상에 대한 규제 완화를 호소했다. “그래도 요즘은 공무원노조 문제 때문인지 약간은 잠잠한 것 같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40여분 동안 한명의 손님이 왔다 갔으며 그의 손에는 천원이 쥐어졌다.

옥수수 장사를 하다가 11월달부터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최모씨(53. 여).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은 횡단보도와 인접한 곳이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편이다.

“겨울 한철 장사로는 붕어빵이 나을 것 같아 옥수수는 잠시 접었다.” 최씨는 아침 9시에 나와서 밤 11시나 12시쯤에 들어간다. “밥은 붕어빵 한 두개 집어먹기도 하고...”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는 것에 비하면 수입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단속이 신경 쓰이며 하루종일 서 있는 상태에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허리 한쪽이 마비된 느낌이라고 한다. 병원에서는 쉬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붕어빵 장사로 버는 돈이 가계의 유일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에 짭짤하게 보일지 몰라”라며 최씨 역시 단속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리어카도 아닌 속칭 ‘구루마’로 장사를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같은 리어카라도 천막이나 부속 설치물의 유무에 따라 범칙금 액수가 달라진다고 한다. 며칠전 그녀는 범칙금 20만원을 물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정모씨(28. 남)는 몇 개월 전만 해도 취업재수생이었다. 작년에 대기업 공채에 지원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신 그는 올해는 눈을 조금 낮추어 중소기업을 택했다. 수십 곳에 이력서를 내밀었지만 연락을 받은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청년실업자라는 낙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취업을 포기했다.

“꼭 회사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 같다. 이른감이 있지만 늦기 전에 내 길을 결정해야 할 듯 싶어 취업을 포기했다.” 부모로부터 300만원의 도움을 받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던 그가 택한 것은 붕어빵 장사였다. “우선 붕어빵을 워낙 좋아한다. 또 겨울에는 남녀노소 불구하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붕어빵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붕어빵을 굽는 순간에도 내년 봄에 시작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불황의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소규모 자본을 이용한 창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특히 생계형 붕어빵 장사를 하려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기계와 재료를 대주는 체인점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붕어빵 기계를 대여해주는 A 기업의 한 관계자는 “한철 장사라고 하지만 예년에 비해 상담문의가 부쩍 늘었다. 하루에도 10건 이상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노점상의 단속과 관련 “계도 단속을 제외하고 한달 평균 약 300건 정도가 단속된다”고 말했다. 또 “노점상 주위에 위치한 점포주들의 신고가 늘었다.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며 생계형 노점상이 증가함에 따라 주변의 기업형 노점상이나 상가와의 마찰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한 노점상인은 “기업형 노점 근절을 명분으로 단속에 나선 직원들이 대형 노점은 손대지 않고 조그만 생계형 노점만 쓸어버린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붕어빵을 사기 위해 들른 한 시민은 “노점상은 한국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도시 미관을 생각해서 단속하기 이전에 확실한 실업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절대 보행에 불편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탈출구로 거리로 나온 이들의 살려는 의욕을 꺾지 말라”고 말했다.

경기침체에 의한 생계형 노점상이 증가함에 따라 단속의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변 상가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지역을 설정,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한 때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다.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강씨의 어깨가 덩치에 비해 유난히 좁아 보인다.

〈미디어칸 고영득기자 ydko@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