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름 | 한효석 | 날 짜 | 2004-03-19 오전 11:30:05 | 조회수 | 1050 |
내용 |
사랑을 강조하는 교회에서도 빌라도 총독만큼은 용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 수 죽음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신자가 외우는 구절에 빌라도 이름을 넣고 빌라도 가 그때 무슨 짓을 했는지를 끊임없이 기억시킵니다. 빌라도는 당시 유대 지역 최고 통치자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죄 없는 예수를 풀어줄 수 있었지요. 그런 데도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예수를 고발한 사람들에게 예수를 처벌할 수 있 는 권한을 넘깁니다. 말하자면 빌라도가 해야 할 일, 빌라도가 할 수 있는 일을 피하는 바람에 예수가 죽습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되고 벌써 한 주가 지났습니다. 바로 그 날, 팔순이신 우리 어머니는 나라에 커다란 재난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셨는지, 제게 전화를 하 여 입조심 몸조심하라고 신신 당부하셨습니다. 그 분들 세대에는 격변이 있을 때 면 멀쩡한 사람이 귀신도 모르게 끌려가 죽기도 하였으니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합니다. 이제 마음이 진정되고 안녕하신지요? 탄핵을 계기로 지지도가 변하면서 어느 정 당은 화장실에 가서 웃고, 어느 정당은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속도에 넋이 나갔습니다. 이제는 사태를 냉정하게 보실 만한 여유가 생기셨는지요? 이런 일로 도 나라가 휘청하지 않을 만큼 우리가 성숙하였다는 것을 느끼셨는지요? 어느 정 당을, 어느 누구를 지지할 건지 따져보시는지요? 돌이켜 보면 이번 탄핵 사태는 대통령 탓도 아니고 야당 국회의원 탓도 아닙니 다. 궁극적으로 우리 탓입니다. 해방 이후 친일파에서 시작하여 516 군사 쿠데 타, 유신 헌법, 광주 항쟁, 전두환 5공화국과 노태우 6공화국 따위를 놓고, 우 리 국민들은 빌라도처럼 판단해야 할 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라도 516 을 군사 쿠데타로 규정하였다면 그 세력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했어야 합 니다. 광주 항쟁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하였으면, 광주 진압에 관련되어 출세 한 사람을 청산하여야 했지요. 그런데도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기득권자가 되어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고, 국회의원이 되어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이렇게 우 리는 그 동안 '공정, 중립, 중용'이라는 이름 뒤에 비겁하게 숨어서 우리가 판단 할 수 있고 판단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였지요. 이제라도 우리가 확실하게 선을 그었으면 좋겠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 대로 날짜에 상관없이 대통령 탄핵 문제를 소신껏 판단하여 빌라도가 되지 않아 야 합니다. 나이 드신 분은 나이 드신 대로 젊은이에게 선악을 분명하게 그어주 어야 합니다. 또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 니다. 좋은 게 좋다고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지요. 결국 그렇게 되면 이번 일처 럼 나중에 더 큰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국회의원 뽑는 날, 우리는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 다. 정치판이 아무리 더러워도 정치에 참여하여 자기 생각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 놈이 그 놈 같을수록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어 투표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미 워하는 사람보다 빌라도처럼 운명을 피하는 사람이 더 나쁘다는 것을 아시잖습니 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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