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시험의 수모
이 름  손석춘 날 짜  2003-11-17 오전 2:39:16 조회수  2287

내용

 (주: 언론사 입시전형이 한창입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전형이 끝나
 면 더욱 차가운 바람이 불것입니다. 그 바람 속에서 이번 전형에서 떨어진 사람
 들은 어깨를 움추리고 다시 일상의 도서관으로 돌아가야겠지요. 그렇게 긴 겨울
 이 펼쳐집니다. 혹시 그 겨울 앞에 서계시거나 곧 서게될 분들을 위해 글 하나
 를 골라봤습니다. 힘내시길 바라며...)
 
 수습기자 시험의 계절입니다. 기자 지망생들은 '몸살'을 앓게 마련이지요.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사에 들어온 수습기자와 수습사원들이 논설위원실에 인사하러 왔
 습니다. 참신한 표정들 가운데 어느 뒤풀이 자리에서 본 젊은 벗도 눈에 띄었습
 니다.
 
 문득 그 자리에 없는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오해 없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드리
 는 편지는 '낙방'한 당신을 '위로'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
 로의 현실을 담담하게 들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만, 결코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언론계
 가 '담합'하듯 시행하고 있는 수습기자 시험제도에 허점이 얼마나 많은 지 당신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뜬금 없지만 짚고 넘어갑시다. 수습기자 시험의 '낙방'. 그것은 당신의 인격을
 저울질 당한 것도, 예비 기자로서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의미도 결코 아닙니다.
 저 자신도 수습기자 선발과정에서 한 모퉁이에 있었지만 어떤 시험 문제를 내느
 냐에 따라, 그리고 주관식 문제나 면접은 누가 채점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당락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의 공정성 여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
 니다. 문제 출제자나 채점하는 사람의 주관적 잣대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
 진다는 사실의 문제입니다.
 
 고백하거니와 저 또한 수습기자 시험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도 비교
 적 일찍 제가 수습기자 시험을 통과한 것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입니다. 시퍼렇게 젊은 당신이 좌절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시험에 떨
 어진 수많은 젊은 벗들 가운데 한겨레신문사는 물론이고 한국 언론계가 놓친 참
 된 기자 재목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늘 제가 서 있는 자리에 숙연해집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먹물사회'가 그렇듯이 언론계도 사고에 큰 편차가
 있습니다. 더구나 언론계는 이른바 '언론고시' 현상 탓에 갈수록 학생운동 경험
 이 없거나 심지어 운동에 공연한 거부감을 지닌 기자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통
 탄할 노릇입니다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인터넷시대가 열리면서 종이신문이나 거대방송사가 아니더라도 기
 자로서 활동할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혹 이미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 않을까 우려됩니다만, 어쩌면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자가 되느냐 안 되느
 냐에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지성인으로서 어떤 철학과 어떤 자세로 삶을 걸
 어가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신이 한국 언론의 질을 높이겠다는 열정에 불탄다면, 한두 번의 실패로
 좌절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입니다. 수습기자 시험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충고를
 묵묵히 듣고 참고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그 수모에 가까운 '통과의례'를 슬기롭게 이겨가려는 당신의 의지
 와 인내입니다. 올해 뜻을 이루지 못한 수많은 젊은 벗들이 내년에는 꼭 언론노
 동자로서 활동하길 기원합니다.
 
 오늘 한국 언론계는 시대적 과제엔 눈 돌린 채 천박한 경쟁의식에 가득 차 '악화
 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어느 신문, 어느 방송, 어느 매체든 좋습니다.
 이 땅의 언론계를 바로 세울 깨끗한 꿈과 패기로 넘치는 '아직 오지 않은 당
 신'을 기다리겠습니다.
 
 2003년 가을, 스러져 가는 노동자·농민·빈민 앞에서 더없이 무력감에 젖어있
 는 저 자신에 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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