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NIMBY)는 정당하다
이 름  우한기 날 짜  2003-08-09 오후 11:32:45 조회수  1839

내용

 [한겨레21] 2003년07월30일 제470호
 
 
 님비(NIMBY)는 정당하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옳은가
 …갈등을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법
 
 
 우리가 신문에서 심심찮게 듣는 얘기가 ‘집단이기주의’야. 어떤 사람들이 자
 기 동네에 쓰레기처리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해서 데모라도 하면 어김없이 등장
 하는 말이지.
 
 더 큰 님비
 
 ‘집단이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논리가 뭐게? ‘대를 위
 해 소를 희생한다’는 거지. 그렇게 해서 전체 사회가 유지된다나? 얼핏 맞는
 말 같지만, 여기에 바로 함정이 있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은 다수에 속해
 있다는 거지. 만약 소수가 기꺼이 자기 이익을 포기한다면 그건 아름다운 거야.
 그렇지만 그 소수가 자기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잘못은 아냐. 거기
 에 대놓고 집단이기주의 운운하는 건 다수의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말야, 그 다수란 게 누구지? 그 쓰레기처리장 덕분에 이익 보는 사람이
 야. 이렇게 따지고 들면, 아주 심각한 결론이 하나 툭 튀어나와. ‘집단이기주
 의’라 비난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집단이기주의자’라는 거지. 자기의 쾌
 적한 환경을 위해 남에게 더러운 환경을 강요한 거니까.
 
 언젠가는 당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란 게 불가피해보일지도 몰라. 그러나 이 한 가지
 만은 알아두자고. 그런 주장이 통하는 사회에서라면, 언제 내가 소수가 될지 모
 른다는 사실 말야. 자업자득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이건 노동자들의 파업이
 나 농민들의 시위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돼. 자기 권익을 주장하는 사람들
 을 비난하기 시작하면, 언젠가 내가 권익을 주장할 때 고스란히 그 비난을 되돌
 려받게 된다는 말씀. 이처럼 다수의 이익(‘민족의 이익’이니 ‘국가경쟁력’이
 니 하는 말도 다 똑같아)이라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주장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의 권리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 명심하자고.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가
 
 쪽수로 소수를 밀어붙여서 이룬 합의는 사회적 합의가 아냐. 그건 소수를 굴복시
 킨 것에 지나지 않아.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합의를 이뤘을 때만 진정한 사
 회적 합의라 할 수 있단 말이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일일이 사정을 다 들
 어주면 쓰레기 천지가 될 거라고 아니지. 거꾸로 님비를 정당한 권리 주장으로
 받아들였을 때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 그때부터 대등한 대화와 타협
 의 길이 열린단 말이지.
 
 가령 ‘좋소. 땅값을 세배로 보상하겠소’라는 타협을 할 수도 있겠지. 누가 그
 돈을 감당하냐고 그야 수혜자가 내야지. ‘애걔, 그러면 차라리 우리 동네에 짓
 겠네’라는 말이 나오면 그 순간 문제는 절로 해결된 거지. 최적지에다 짓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이처럼 진정한 사회적 합의는 모든 개인을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
 하는 거야. 이게 갈등을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법이지. 아울러 나 자신이 사
 회 전체와 맞먹는 권리 주체가 되려면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
 지 말자고. 그게 바로 내 권리를 지키는 길이니까.
 
 
 우한기 | 광주 플라톤 아카데미 논술강사
 
 
                  ------------------------------------------
                        All Contents Copyright(c) Since 2000.3 자유로운 세상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