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을 선출하라
이 름  홍세화 날 짜  2003-01-08 오전 12:03:55 조회수  1491

내용

 교장을 선출하라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아직 한국 사회 물정에 어두운 탓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집단 가운데 빼놓
 을 수 없는 게 교장 집단이다. 오랜 현장 교육의 산 경험과 교육 철학을 바탕으
 로 이 사회의 어두운 교육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 발언에 적극 나서야
 할 사람들인데, 도무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일생 동안 이 나라 교육 현장에서 올곧게 몸담은 선생님이라면 무엇보다 하루
 16시간씩 학습 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급기야 수능 시험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목
 숨까지 버리는 학생이 생기는 교육 현실에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기는
 커녕 학부모들의 압력을 핑계삼아 법에 어긋난 0교시 수업, 보충수업, 야간자율
 학습의 시행에 앞장서고 근엄한 표정 뒤에서 ‘간접 수당’을 챙기는 위선을 마
 다하지 않는다.
 
  평생 이 사회의 교육에 몸바쳐 온 선생님이라면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물신주의
 가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마땅하다. 예를 들면 “부자 아빠를 꿈꾼다”거나 “당신의 능력을 보
 여 주세요” 따위의 광고가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얼마나 큰 해악
 을 줄 수 있는지 교장 모임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환기시켜야 할 듯한데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학교운영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교원
 정년 연한을 낮추는 결정에 반대해 궐기하는 일이 고작이다.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교장이라면 수많은 교사들이 왜
 평생 평교사로 남겠노라고 선언하는지에 대한 까닭을 규명하기 위해 나서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실상 그 선언은 참신한 게 아니라 비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교장들은 그런 선언이 나온 정황에 대해서는 짐짓 모른 척한다.
 
  한국의 교장 집단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나의 의문은, 교사들 가운데 누가
 교장이 되는가를 알면서부터 조금은 풀렸다. 교장과 교육청의 입김에 의해 거
 의 결정되다시피 하는 교감·교장 자격증제가 교사들에게 기존의 교감·교장에
 게 충성하고 무사 안일주의·보신주의에 매몰되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교감·교
 장 승진을 둘러싼 근무평가 관련 비리가 비일비재한 것은 당연한 결과고, 30대
 부터 벌이는 승진 각축전으로 학교 현장이 황폐화되는 것 또한 불보듯 뻔한 일
 이다. 교사들의 숨통을 조이는 교감·교장 자격증제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
 치는 것은 물론이고 교사들 사이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을 낳는다.
 
  ‘평생 평교사 선언’은 ‘승진이냐 아이들이냐’의 기로에 선 교사들의 양심
 선언이었다. 부패하고 수구적인 교육 관료들이 자격증제를 통해 교원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해 관리와 통제를 수월히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구조를 뚫
 고 승진한 교장은 학교에서 봉건시대의 영주처럼 군림한다. 교장은 학교에서는
 교장-교감-부실장-평교사-학생의 피라미드 구조의 최상층에 자리잡지만, 교육부
 와 교육청에는 마름 구실을 충실히 한다.
 
  학교 현장에서 분출되는 목소리를 교육부에 전달해 교육 정책의 개선을 도모하
 는 게 아니라 관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중앙(교육부)의 지침을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일에 만족한다. 각 학교에서 교장이 누리는 1인 지배 체제는 교육부
 (청)에 대한 그들의 마름 행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며 관철된다. 이 같은 권위
 주의적 구조에 갇힌 학교에서 참교육을 실현하거나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시민
 의식을 함양케 한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학교 환경 자체가 비
 민주적이고 위선적이며 정당성 없는 권위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가.
 
  이제 사회 일각에서나마 교장 선출 보직제를 주장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
 다. 교육부(청)의 관료주의에 편승하거나 거기에 매몰된 교장에 의해 비민주적
 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학교를 해방시키려면 교장을 교사들이 선출해야 한
 다. 교장이 교사들의 신임을 얻어 선출됐을 때, 현장의 다양한 요구를 교육부
 (청)에 거침없이 전달하는 진정한 의미의 학교(현장)가 될 것이다. (『한겨레
 21』 2002년 11월 13일자에서 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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