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교사의 못난 고백
이 름  한효석 날 짜  2002-08-07 오후 11:15:09 조회수  1100

내용

 잘난 교사의 못난 고백
  - 학생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생님들께
 
 한효석
 
  생각을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요. 뭘 알아야 생
 각을 바꾸지요. 그런 사람에게 무릎을 치며 깨달을 날이라도 빨리 오면 좋지요.
 죽을 때까지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남들이 일러주지 않아서, 스스로 깨닫
 지 못해서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습니다.
 
  90년대 초반, 제가 '명문' 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등학교는 시
 험을 치르고 합격해야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중학교 때 적어
 도 한 자리 등수를 하던 학생들입니다. 이 고등학교 3학년 거의 모든 졸업생이 4
 년제 대학에 입학하던 때가 많았으니, 한 마디로 말해 수재들이 모여 있는 학교
 였지요.
 
  그 학교에 부임하고 첫 교실에서 처음 수업할 때 많이 긴장했어요. 대단한 학생
 들이니 교사 역량을 금방 짚어 볼 것 같아 불안했고, 어려운 질문으로 교사를 난
 처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어요. 그 학교에 오기 직전 학교에서는
 한 교실에 한 열 명 학생들만 공부했지요. 나머지 학생은 책상에 엎드려 자거
 나, 남들 공부하는데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오목을 두었어요.
 
  제가 그때만 해도 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던 교사라서, 공부하지 않는 애들을
 어떻게 해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학생이면서 공부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
 게 생각지 않고, '애들이 대학에 가지 않으니까, 공부하기 싫으니까 내 수업을
 듣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시골 애들이라서 원래 그러려니 했습니
 다.
 
  그런데 수재 학교에서는 상황이 아주 달랐습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
 을 위해 여러 번 이야기할라치면 다른 학생들이 아주 지루해 했습니다. 알아들었
 는데 벌써 같은 내용을 서너 번씩이나 설명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맹자가 인생
 에서 세 가지 즐거움을 꼽으며, 뛰어난 제자를 만나 교육하는 것을 셋째 즐거움
 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싶더군요.
 
  그때는 김영삼 정부가 막 출범하던 때라, 우리 사회 권위적인 부분과 금기였던
 부분이 조금씩 열렸지요. 그래도 정보가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교실
 에서 5월 광주와 삼청 교육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신기해하고
 가슴아픈 역사에 분노하고, 시대의 슬픔을 공감했습니다.
 
  그렇게 그 학교에서 5년을 보내고, 그 학교를 떠나 그 옆에 있는 상업학교로 갔
 습니다.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지던 97년이었지요. 그때까지도 저는 제가 굉장히
 잘난 교사인 줄 알았어요. 교사로서 실력이 있고, 시대 아픔을 공감하고, 아이들
 에게 존경받으며,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잘난 것들이 그 상업학교에서는 하나도 안 통했어요. 교실에 들어가
 도 제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간단한 것도 알지 못
 했습니다. 시대의 아픔에도 무심하고, 내 딴에는 재미있게 농담을 섞었는데 시큰
 둥해 하더군요. 그런 상황이 계속되니 나중에는 화가 나더군요. 모든 것이 짜증
 스러웠어요. 결국에는 수재 학교로 오기 전 시골 학교를 생각하며, '역시 상업학
 교 애들이라서, 수준이 떨어져..'하며 나를 스스로 위로하며 지냈지요.
 
  그렇게 1년을 실패하며 보냈습니다. 돌아오는 3월을 맞이할 자신이 없었습니
 다. 수업이 안 되는 상황으로 또 1년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학생과
 교실이 두려웠어요. 그 잘난 교사가 어쩌다 이렇게 형편없는 교사가 되었나 싶
 어 자존심이 무척 상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알고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만
 이 컸습니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옆에 있는 수재학교에서는 대단한 교사였다
 는데, 우리 학교로 쉬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우리 학교가 상업학교
 라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무시한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지요. 가르칠 대상이 달라졌는데도 내 방법은 여전히 옛날 그대
 로이며, 나 편하자고 그 알량한 지도 방법 몇 가지에 아이들을 꿰맞추려고 하였
 구나, 내가 아이들을 위한다 하면서도 아이들을 너무 몰랐구나, 배우려는 아이들
 을 위해 내가 섬세하게 배려하지 않았구나...... 부끄럽대요. 그리고 옛날 시골
 학교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는 것도 알았지요.
 
  그래서 그 날로 저를 바꾸었습니다. 다른 과목 교실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초등
 학교 수업 방식을 참조하기도 했지요.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학생들이 교실에서 나를 반겼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살 만하더군
 요. 그 다음부터는 수업이 재미있고, 교실에 자꾸 들어가고 싶고, 아이들이 예뻤
 어요.
 
  모두다 열심히 사는 분들 속에서 자기가 남과 조금 다른 것을 잘난 것으로 착각
 하시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네요. 학생이 두렵고 학교가 무서운 분들에게 놓치
 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시라고 제 젊은 시절 일을 말
 씀 드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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