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망한 것일까?
이 름  한효석 날 짜  2001-08-01 오후 1:46:59 조회수  1147

내용

 러시아에도 거지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 거지가 있다니.... 우리가 묵는
 호텔 앞에서 꼬마들이 관광객에게 돈을 달라고 하더군요.. 바이칼 호수 옆에서
 도 그런 꼬마를 만났습니다. 기차 역이나 성당 앞에서 노인들이 동전 통을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러시아가 어느 부분에서 이제는 국민들을 책임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우리 나라 텔레비전에서 어느 예사롭지 않은 농촌 공동체를 소개하였습니
 다. 어느 한적한 시골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데, 마을 인구가 모두
 50여 명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은 농사였습니다. 자급자족해야 할 먹거리를 생산
 합니다. 물론 다같이 모여 일합니다. 논밭 농사말고 닭을 키워 닭과 달걀을 그
 마을 밖 도시에 내다 팔아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또 사람이 살며 해야할 일
 들을 따로 전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을 전체 주민들 식사를 1년 내내 맡
 은 사람도 있고, 그 50여 명이 벗어 놓은 옷을 날마다 빠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동네 어린아이를 모두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하루 종일 농
 사만 짓는 사람도 있겠지요.
 
 특이한 것은 그 동네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
 이 마을에 있는 모든 것이 공동 소유이니, 구태여 자기만을 위해 돈을 쓸 일이
 없습니다. "돈 가치, 개인 소유"라는 의미를 잊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
 어 빨래 담당자가 빨래를 해서 책꽂이 같은 선반에 올려 놓습니다. 그러면 각자
 자기 옷(속옷 포함)을 찾아 입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 빨래 담당자가 어떤 집 남
 편 팬티 상태를 그 남편의 아내보다도 더 잘 압니다.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내역을 적어서 회계 담당자에게 주면 그 담당
 자가 구해 줍니다. 마을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요. 예컨대, 건전지가
 필요하다든지, 약이 있어야 한다든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다 줍니다. 닭
 과 달걀을 팔아 돈을 버는 것도 회계 담당자가 다 알아서 하니, 그 마을 사람들
 은 닭과 달걀을 얼마에 파는지도 모릅니다.
 
 자기가 잘 하는 것만 한 가지에만 열심히 매달려 살 수 있는 마을입니다. 가끔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웃으며 이런 삶에 익숙해지니까 마음이 아주 편하다고 하네요. 욕
 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사니까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박한 "공산주의 마을"에도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그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그 마을 밖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낼 때는 아이들에게 돈에 대해 가르
 쳐 주어야 합니다. 학교 앞 상점에서 돈을 안 내고 과자와 사탕을 그냥 집어 들
 까봐 걱정스러운 것이지요. 실제로 그 마을 아이들은 가게 주인에게 왜 돈을 내
 야 하는지, 돈이 뭔지를 알 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은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마을 밖 경쟁 사회에서 살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어 보입니다. 대학에서 많이 배워 다시 마을로 돌아와 살겠다고 합
 니다.
 
 제가 그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것은 그 사람들이 추구하는 공산주의 공동체 실험
 이 얼마나 오래 버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이 있
 어, 그런 것을 외부에서 들여오려면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을
 에서도 닭과 달걀을 키워 마을 밖 도시에 내다 파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마을에
 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면 이 마을은 외부와 고립된 상태에서도 오순도순 아
 주 잘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옆 마을 사는 것을 보더니 이 마을 사람들 씀씀이가 갈수록 커진다
 면? 처음 출발할 때와는 달리 나중에 "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
 각에서 은근히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열심히 일을 했지만 갑자기 마을 사
 람들 전체가 전염병에 걸려 일시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의료비 지출이 폭
 증한다면? 노인들이 늘어서 쓸 돈은 많아지는데, 일할 만한 사람은 점점 줄어든
 다면?
 
 그 마을 회계 책임자는 "나중에 벌어서 갚지"하는 생각으로 외부에서 돈을 꾸어
 서 우선 그 손실을 메꿀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수입과 지출 상황을 공개하
 고, 마을 주민들에게 더 열심히 일할 것과 더 검소하게 생활할 것을 권유할 것입
 니다. 그것이 한계에 다다르면 그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을 지탱하던 약속을 깨
 고, 다른 마을처럼 개인 소유를 인정하여 각자 알아서 열심히 살면서, 각자 주어
 진 현실에 대처하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 마을을 보니 소련 사회가 이해되었습니다. 소련은 사회 체제가 나빴던 것이
 아니라, 변하는 세상에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원도 무궁무진하고 사
 람도 많았습니다. 소련이 오랫동안 전세계 공산 국가의 대부 노릇을 할 수 있었
 던 것도 그 탓이지요. 황제가 통치하던 제정 러시아 때보다도 공산 국가로 출발
 하면서, 생산성이 늘고 자신감이 붙어 수많은 공산 국가를 지원할 수 있었던 것
 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와 무리하게 군비 경
 쟁, 체제 경쟁을 벌이다가 자기 능력 이상으로 지출이 늘고, 그 모자란 부분을
 빚으로 연명하다가 결국 그 빚을 갚지 못해 쓰러진 셈입니다. 가령 일용 엄니 사
 는 마을에 댄스홀이 들어선다면, 마을 사람들이 일보다 노는 데 정신을 팔기 쉽
 지요. 사람 사는 것이 이렇게 신날 수도 있구나 하며 열심히 놉니다. 댄스홀 주
 인은 돈을 벌어 궁극적으로 자기가 사는 서울로 돈을 빼돌리지, 그 마을을 위해
 항구적으로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그 마을 재산이 점점 줄겠지요. 댄스홀 주인
 은 언제든지 그 마을에서 손 뗄 수 있습니다. 그 댄스홀 주인을 미국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미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다국적 기업이 등장하여 전세계가 자본주의 물결
 에 휩쓸리면서, 고립되어 있는 나라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됩니다. 말하자면
 세계가 미국 손아귀에 들어가 미국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지요. 같은 자본주의 국
 가인 일본도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해 15년째 불황을 겪고 있는데, 하물며
 순진하고 어리숙하게 살아온 소련쯤이야....
 
 러시아에서 만난, 많은 지식인들은 과거 소련 체제를 그리워합니다. 그때는 나라
 에서 알아서 다 챙겨주었는데, 지금은 이것저것 각자 챙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 힘들지요. 그리고 과거에는 돈 크기로 따지지 않고 자기가 지니고 있는 능
 력에 맞추어 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하여 국가에 기여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돈 크기를 따져 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공산주의 마을 사람들도 소
 련을 교훈으로 삼아야 마을이 망하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사람들을 만나면 많은 것을 궁금해했습니다. 특히
 한국인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우리 나라는 가진 것도 없이 자본주의를 일군
 나라이니까요. 기차에서 만난 어느 여자는 지혜를 일러달라고 하더군요. 한국이
 러시아에게 들려줄 교훈이 없냐는 거지요. 이르쿠츠크 공과 대학 교수, 부총장
 이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만나는 것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본주의를
 알고 싶은 겁니다.
 
 지금 러시아 어린이들은 레닌이나 스탈린을 모르고 삽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 공동체도 서서히 해체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농업 기반 사회가 무너지던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그때 우리 나라 시골 할머니들은 서울 사람들이 캠핑 왔다가 밭에 있는 파 몇 뿌
 리만 팔라는 말을 했을 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파는 개념을 몰라서, 대부
 분 그냥 뽑아먹으라고 하셨지요. 러시아 대도시를 빼고는 러시아 전체가 지금 그
 런 분위기입니다..
 
 러시아 젊은이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방식을 반가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지
 금은 일거리가 없어 취업하지 못해 힘들어하지만, 앞으로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
 휘하면 금방 부자가 되어 잘 살 수 있다는 장밋빛 꿈이 더 커보이니까요.... 우
 리도 그랬잖아요. 젊었을 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 만만했지요... 지
 금 러시아는 정보를 독점하던 구 소련 고위 관료들과 마피아들이 경제를 좌우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질서가 잡히면 정상적으로 돌아가겠지요. 영화 "대
 부"를 보면 미국도 한때 마피아가 시장을 장악하던 때가 있었지요.
 
 우리 일행은, 새로이 바뀌려는 러시아를 기대하면서 "100년 뒤에 보자. 러시아
 가 진짜 망한 것인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직 세계 변화가 진행중이므로
 100년 뒤에나 오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변화에 맞추어 발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우리도 이 격변을 헤쳐 나가기가 힘들다
 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가 1997년에 겪었던 아이엠에프 사태
 가 바로 변하는 세상에 대비하지 못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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