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1994년 교무실에서 발표했던...
이 름  한효석 날 짜  2001-05-31 오전 12:38:43 조회수  978

내용

 제가 1994년에는 부천고등학교에서 근무했지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관리자들은 대충 넘어가거나, 덮어버리려고 하지요... 그때마다 그래서는 안 된
 다고 조언을 했는데도 개선되는 것이 없더군요. 나중에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교무실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주임을 그만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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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한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제 8교시에 1학년 영어 재시험을 치렀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뭔가 잘못했으니
 재시험을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사가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지만 사람 사
 는 일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으니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으며 또 잘못되었으면
 재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재시험을 왜 보느냐가 아니라 재시험 보기까지
 결정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늘 지적해 왔습니다만 우리 학교에서 어
 떤 일을 처리할 때 어떤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수십 명의 구성원으로 조직된 학교가 조직원 개개인의 뛰어난 힘을 단합하여 움
 직이지 않습니다. 쉬쉬하며 과정을 숨기고 단지 몇몇 사람의 복안에 따라 지시
 만 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왜 재시험을 치르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재시험
 이란 어떤 이유로든 학교의 실수를 일단 인정하는 셈입니다. 학교 행정이 학생이
 나 학부형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책임은 학교장이 지겠지만, 그 결과는 교사
 와 학생 사이에 불신과 단절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재시험은 모든 선생님이 그 과정을 알고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여 일사불
 란하게 한 목소리로 설명하며 처리해야 할, 큰 일입니다.
 
  교육 목표를 향해 우리 교사가 힘을 모으고 단합해 나아가야 좋은 결실이 있다
 고 교장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사들이 뭘 알아야 단합
 을 하고 관리자가 뭘 알려줘야 힘을 모으지 않겠습니까?
 
  학부형들이 학교로 전화를 합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릅니다. 심지어 재시험을 보는지도 모
 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주임 교사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냐고 비꼽니
 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어려움에 대처해 나갑니다. 하물
 며 이 커다란 학교에서 벌어지는 큰 일이, 남도 아닌 우리들끼리도 비밀에 부쳐
 지는 사실에 저는 절망합니다.
 
  교감 선생님은 저에게 사사건건 반대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저는 사상이 불
 순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되도록 말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학교와 학생을 위하고 다른 교사를 돕는 길인 것처럼 말씀하셨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생에게 학교가 불신받고 교사끼리 서로 믿지 못하는
 이 시점에 이르러 교장 선생님과 교감 건생님께 한 마디 고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발 선생님을 아껴주시고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대해 주십시오.
 교사는 감시 대상이 아니며 기계도 아니고 군인도 아닙니다. 사랑과 믿음을 바탕
 으로 인간다운 정이 넘치고 교사.학생.교직원이 서로 아껴주는 학교 풍토를 만들
 어 주십시오.
 
  저는 한때 좋은 아이들이며 좋은 선생님과 더불어 부천고등학교에 근무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부끄럽습니
 다. 더구나 이런 풍토에서 주임 노릇을 한다는 사실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동료 교사에게 한 가지 이해를 구합니다. 저는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
 는 바람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만 주임으로서 저의 한계를 느낍니다. 후배 교
 사들 보기가 부끄러워 더 이상 주임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주임이기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성적관리 위원이기를 포기합니다. 그 동안 제가 실
 수한 것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1994. 7. 14. 한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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