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선생님, 우리 선생님
이 름  김혜주 날 짜  2000-09-19 오전 9:44:37 조회수  1011

내용

 김 혜 주(주부, 부천시 원미구 상1동 신라아파트)
 
  몇 년 전 오월이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매스컴에는 참스승에 관한 갖가지
 기사가 실리고, 교육부에서는 스승 찾기 창구를 마련했다. 나도 그렇게 교육청
 을 통해 김 숙자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1학년 때도 영어를 맡으셨는데 2
 학년 때는 담임이 되신 것이다. 첫째 아이를 갓 낳은 젊은 선생님은 너그럽고 사
 랑이 많은 분이어서 우리는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나는 특히 영어를 좋아하
 고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로 나를 많이 돌봐 주셨다. 매번 내 부실한 도시락이 마음
 에 걸리셨는지, 어느 소풍 전 날 선생님은 우리 집에 오셔서 같이 도시락을 준비
 해 주셨다. 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집이 깔끔하지 않아서 나는 부끄러웠지만, 선
 생님은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도마랑 칼을 내놓고 김밥을 싸주셨다. 그날 밤은
 윗마을 반 친구 집에서 주무시고, 다음날 우리와 같이 소풍을 가셨다.
 
  어느 날은 내가 촛불을 켜 놓고 공부를 하다가 깜박 조는 바람에 불이 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얘기를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깜짝 놀라시더니 집으로 할아버지
 를 찾아가셨다. 그 즈음에는 시골에도 전기를 가설하기 시작하던 때여서 동네 사
 람들은 거의 전기를 가설했는데, 할아버지는 형편도 그렇지만 워낙 고집이 세셔
 서 그때까지도 호롱불을 사용하며 내가 공부할 때만 촛불을 켜 주셨다. 선생님
 은 이제 내가 중 3이 되면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촛불은 위험하기도 하
 고 눈도 많이 나빠진다며 할아버지를 설득하셨다. 선생님께서 전선이며 가설 비
 용을 모두 부담하겠다며 계속 설득하시자 완고하신 할아버지도 고집을 꺾으셨다.
 
  선생님은 대구에서 출퇴근을 하셨는데, 가끔씩 토요일이면 나와 같이 대구로 가
 서 부모님 집에 나를 데려다 주셨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 대구 역에서 만나서
 같이 기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방학 때면 나는 대구의 부모님 곁에서 머물렀는
 데, 선생님 댁으로 자주 놀러 가서 아기도 봐 드리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
 
  중 3이 되어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자 선생님은 내가 인문계에 진학해 좋은 대
 학교에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집안 형편
 도 어려웠고 아버지는 전혀 그럴 뜻이 없으셔서 나는 대구에 있는 실업계 고교
 에 원서를 냈다. 철이 없어 인문계와 실업계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대학에는 꼭
 가야하는 건지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부모님 곁으로 간다는 것만 좋아라 하는
 나보다 선생님이 더 안타까워 하셨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편지를 계속했고, 은행에 취직하고 야간대학 영문과
 에 진학한 후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선생님은 아주 대견해 하시며 내가 영문과
 를 택한 것을 기뻐하셨다. 그러면서 "네가 지금 내 말을 다 이해할 지 모르겠지
 만, 이 말은 꼭 하고 싶구나. 더 공부하고 싶거나 결혼하게 되거나 중대한 결심
 을 할 때, 네 가족보다 너를 먼저 생각해라. 가족 사랑도 좋지만 지나쳐서 희생
 이 되면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하셨다.
 
  그 후로는 한번씩 전화만 오가다가 연락이 끊어졌는데, 그해 오월에 교육청의
 도움으로 근무하시는 포항의 학교와 전화번호를 알게 된 것이었다. 너무 오래 연
 락을 못 드려서 노여워 하시지나 않을까 뛰는 가슴을 누르며 계시는 학교로 전화
 를 드렸다. 전화를 받으시는 선생님께 내 이름을 말씀드리며 기억하시겠냐고 여
 쭙자, 선생님은 "그럼, 김혜주, 기억하지. 너는 내 수제자 아니냐?"라며 반가워
 하셨다.
 
  핑 도는 눈물을 삼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서울 오실 때 연락하시면 뵙겠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그래, 내가 연락하게
 되면 연락하고. 혹시 우리 못 만나게 되더라도 네가 내 생각하는 줄 내가 알고,
 내가 네 생각하는 줄 너도 아니까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요, 선생님. 저는 늘 선생님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자랑스러워하실 뛰어난
 제자가 못되어서 죄송하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하고 사는 것도 선
 생님은 흐뭇해하시죠? 건강하세요.
 
 
                  ------------------------------------------
                        All Contents Copyright(c) Since 2000.3 자유로운 세상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