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아직도 꽃이 피지 않았다(1)
이 름  신 옥 날 짜  2000-07-27 오후 2:02:05 조회수  1203

내용

 구비구비 대관령 고개
 
  4월 7일 아침 6시 40분, 잠이 덜 깬 딸과 아들을 남겨 두고 송내역으로 갔다.
 꽃샘추위가 지났건만 바람은 마치 겨울처럼 세차게 불어 옷깃을 저절로 여미게
 했다. 옷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여의도에서 기다리고 있
 던 관광버스에 올랐다. 압구정 현대 백화점 앞에서 마지막 승객을 태우고 9시에
 동해항을 향해 출발했다. 서울을 떠나 금강산으로 간다는 들뜬 마음 보다는 감기
 로 잠을 설친 탓인지 졸음이 먼저였다.
 
  여주 휴게소를 거쳐 대관령 휴게소에 내리니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었다. 스님
 들의 펑펑한 승복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터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그러나 강풍
 에도 의연한 거목들, 높새바람과 함께 긴 세월의 무게를 안은 노송이 여기저기
 서 날 반긴다. 한쪽으로 쓰러질 듯 흔들리는 나무들. 그래도 꺽이지 않는 것은
 긴 세월을 산 뿌리깊은 나무의 유연함 일 듯 싶다.
 
  세워 놓은 관광버스가 흔들거리고 난 날아갈 것만 같아 남편의 팔을 꼭 붙잡고
 휴게소로 들어섰다. 화장실 걱정 때문에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갈증
 이 났다. 커피 생각도 간절했지만 꾹 참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해발 800m 푸른 산속의 구비구비 길 대관령 고개. 구비구비 돌아가는 밑을 내려
 다 보니 산속에 펼쳐진 정경이 아찔하면서도 아름답다. 고갯길을 내려갈 때 마
 다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끼익 끼익, 마치 어린아이 투정부리는 소리 인 냥 들린
 다. 수북이 쌓인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도 참새 떼가 푸드득 나는 것 같
 다.
 
  영동고속도로 4차선 공사가 한참 진행 중, 깊은 산속에서도 건설현장은 누가 보
 지 않아도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육중한 포크레인, 크레인과 함께 푸른 숲속
 에 어울리지 않게 콘크리트 벽체가 거대하게 세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터널공사
 고가공사도 산속의 적막은 깨지 못했다.
 
  길가엔 잘 조성된 꽃들, 진달래와 개나리가 있어 봄이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
 다. 그러나 산등성이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진달래가 더 고운 연분홍 빛으로
 시선을 끈다. 어쩌다 띄엄띄엄 피어 있는 노오란 개나리 보담 홀로 피어 있어도
 진달래는 더 아름답다. 개나리는 역시 한웅큼씩 피어 있어야 제멋인 것을 이제
 야 알았다. 그러나 이따금 깊은 산속에 혼자 피어 있는 진달래를 보니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애처롭다. 무엇이 급해 진달래는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웠
 을까? 4월의 산은 진달래로 새색시 마냥 붉어졌다. 산속 곳곳에 화사함을 내 품
 는 꽃들 때문인지 개울물은 제 소리도 못 내고 그저 졸졸 흐르고 있었다.
 
  더욱 드세어진 바람으로 뿌연 먼지는 창가까지 다가왔다. 농작물을 덮어놓은 비
 닐은 바람에 여지없이 갈갈이 찢어져 너풀거리다 나뭇가지에 앉았다. 그걸 보니
 마치 무당집에 깃발 날리듯 보였다. 그 흙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숭고해 보인다. 허리 구부린 농부 뒤로 회오리 바람이 휘감고 있다. 그래
 도 버스는 용접하는 듯한 바람소리를 가르며 열심히 달린다.
 
  버스 안에 여의도에선 보지 못한 파리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아마도
 압구정에서 버스에 오른 듯 싶다. 제일 부자동네라는 압구정에도 파리가 있나 보
 다. 버스 문이 열리지 않는 한 파리도 우리와 함께 동해까지 갈 것 같다. 꽤 멀
 리도 왔음을 파리도 알까? 동해에선 제 갈 길을 제대로 찾아갈까? 헛 생각에 웃
 음이 나왔다.
 
  동해 18km를 남겨 두고 왼쪽에 정동진 푯말이 보인다. 텔레비전 드라마 '모래시
 계' 촬영지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장소였다. 조금 가니 정동진 만남의
 광장이 보이고 철로가 왼쪽으로 이어져 있다. 정동진 가는 기차는 아마도 저 철
 로를 달릴 것이다.
 
  동해 휴게소 500m전, 왼쪽으로 짙푸른 동해바다가 출렁인다. 모래사장과 함께
 철조망이 빙 둘러 쳐져 있다. 길가엔 개나리 벚꽃이 활짝 펴 봄이 짙어감을 알린
 다. 흰 벚꽃이 바람과 함께 휘날리고 있다. 마치 때 아닌 눈이 내리는 것 같았
 다. 은빛으로 유혹하는게 과연 봄답다.
 
  여의도에서 출발한지 4시 30분이 지나 드디어 동해항에 도착했다. 시원한 우럭
 탕을 먹으니 아침부터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허기진 뱃속이 든든해져 왔다.
 
 
 맛있게 잡숴요
 
  바람도 우리 관광버스 뒷 꽁무니를 따라왔는지 동해항에도 거세게 불었다. 태풍
 만큼의 위력을 발휘하여 눈뜨기 조차 힘들었다. 배가 출항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거대한 '현대 봉래호'는 끄덕도 없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여객 터미널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입국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
 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현대상선의 적자가 먼저 떠오르 것을 보니 현대가족이
 란 소속감 일 듯 싶다. 1시간을 기다려 수속절차를 모두 끝내고 봉래호에 들어
 섰다. 입구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반갑게 맞이하는 승무원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어
 서 이색적 이었다. 마치 다른 나라 배를 탄 것 같았다.
 
  객실을 찾아 올라가니 입구마다 계단마다 승무원들이 서투른 우리 말로 인사하
 며 환히 웃는게 기분이 좋았다. 그 동안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진심어린 친절
 에 여행의 기쁨이 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2인 1실 객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초미니 호텔처럼 작고 아늑했다.
 
  짐을 정리하고 쉬고 있는데 식사시간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6층으로 올라가니
 음식은 뷔페식 이었고 서빙하는 사람도 대부분 외국인이라 다시 한번 금강산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남아 여행을 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맛있게 드세
 요' 도 아닌 '맛있게 잡숴요' 하는 말엔 놀랍기도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
 시에 마음은 푸근해졌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도중에 봉래호는 동해항을 떠나 장전
 항으로 출발했다. 저녁 7시였다. 바람이 많이 불고 파고도 2-3m 라는 말에 배 멀
 미 걱정을 했지만 약간의 움직임을 느낄 뿐 이었다. 처음 타 본 거대한 유람선
 봉래호는 거친 파도를 무시한 채 불을 밝히며 힘찬 항해를 시작했다.
 
  선실 안 곳곳을 구경하고 갑판 위에도 올라가 보았다. 세찬 바람 때문인지 구경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배 양 옆에 구명보트가 매달려 있었다. '타이타닉' 이
 란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서로 살기위해 아수라장이 된 배 위에서 한자리
 남은 구명보트에 아내를 혼자 보내는 애틋한 노부부, 혼자 살기위해 끝까지 비열
 함을 보이는 약혼자,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의 아름
 다움이 한 장의 사진처럼 이어졌다. 만약 내게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난 어떻게
 할까? 저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닷물에 뛰어내릴 자신도 없고 배 안에 그냥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머리위로 가랑비가 살금살금 내려앉
 았다.
 
  봉래호 만의 특색인 스카이 라운지로 올라갔다. 배의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아
 진동이 더 심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미동도 없었다. 난 커피를 마시고 남편은 칵
 테일 한잔을 마시면서 망망대해를 헤치며 흰 포말을 남기는 봉래호 끝 자락을 내
 려다 보았다. 바닥이 드러나 보이는 수영장과 텅 빈 비취벤치가 밤이 깊어지면
 서 쓸쓸하게 보였다. 여름에 왔더라면 봉래호의 저런 시설들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건데 조금 아쉬웠다.
 
  망망대해, 등대, 깜깜한 밤이 내 주위를 감싸 왔다. 밤에만 운항하니 시간은 절
 약되겠지만 바다의 광활함을 느끼지 못해 섭섭했다. 어두운 밤이라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어 지루해지고 서서히 피곤이 몰려왔다. 단지 갈매기 한 마리가 웬일
 인지 배를 계속 따라오며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멀리서 등대 불빛이 흔들거리
 고 있었다. 객실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우니 흘러간 주옥같던 팝송과 가요를
 들려주던 방송이 들리지 않아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첫 발을 내디딘 북녘 땅 - 아! 고성항
 
  8일 아침 5시가 안되어 눈이 떠졌다. 일출을 보자고 날 깨우던 남편은 비몽사
 몽 싫다는 내 말에 혼자 슬그머니 나갔다. 미안했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걱
 정과는 정반대로 푹 단잠을 자긴 했지만 그 달콤한 잠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었
 다.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아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너무 편안해 마치 내 집 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처럼 느껴져 행복했다.
 
  6시부터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원래 아침을 안 먹었지만 산행을 위해 일부러
 간단히 먹었다. 깊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외국인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바다 한 가운데서 식사를 하는 낭만이 좋았다. 평소 식당에서는 느끼지 못한 또
 다른 기분과 품위를 지키고 싶은 자존심으로 표정도 저절로 우아한 척 해졌다.
 
  7시에 드디어 장전 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에 서둘러 갑판위로 나왔다.
  아! 북녘 땅. 갈 수 없는 나라. 가장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아니, 떨어져 나간
 적도 없었던 한 땅 덩어리 이였는데도 그 동안 가볼 수 없었던 땅이란게 믿기지
 않았다. 군사분계선을 가까이 두고 빙 돌아 3시간이면 올 수 있는 곳을 우리는
 12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이었다.
 
  설레는 마음 속으로 병풍처럼 드리워진 낮은 산들이 나타나고 채색되지 않는
 몇 개의 회색 건물이 멀리서 차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 본 북녘 땅이
 란 생각에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의 중요 군사 항이기 때문에 절대 사
 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금강산 여행이 자유로움이 아닌 규제
 속에 이뤄진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바다는 텅 비어 있었다. 북한의 다른 배는 단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선
 착장엔 어제 들어온 금강호가 텅 빈 바다를 장악한 듯한 모습으로 정박해 있었
 다. 마치 북한이 아닌 우리 나라 바다 인 듯이......
 
  조별로 모여 주의사항을 들은 후 봉래호에서 내려 바로 옆에 대기 중인 작은 배
 를 타고 5분 정도 가는 고성 항으로 향했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거리를 공사가
 덜 되어서인지, 통제불편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또 다시 배를 타는 번거로움과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항구라기 보다는 마치
 무인도에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의 금강호, 봉래호만
 이 떠 있을 뿐 이었다.
 
  드디어 첫 발을 내딛었다. 북녘 땅이라는 곳에...... 주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
 고 북한 통행 검사소까지 걸어가는데 경비병인 듯한 사람이 혼자 서 있었다. 내
 가 만난 첫 북한사람이라 긴장되어 눈이 마주치지 않게 바라보았다. 마치 우리
 대학교 학군단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정녕 북한 땅이란 말인가? 50
 년 동안이나 올 수 없었던 금단의 땅, 우리와 똑 같이 생긴 우리 한 민족이 사
 는 땅인데도 이념의 이데올로기 무게에 눌려 난 이방인처럼 낯선 표정으로 들어
 섰다.
 
  나무가 거의 없는 산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산 위에서 군인이 우리를 바라
 보며 서 있었다. 왜 군인이 단지 관광객일 뿐인 우리를 감시해야 하는가? 서글
 픈 생각이 들었다. 왼쪽엔 도로공사가 진행 중 이었고 거기에도 군인 2명이 서
 있었다.
 
  첫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우리는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조장의
 뒤를 따라 통행검사소로 들어섰다. 핸드폰, 워크맨, 제한된 캠코더 등은 반입금
 지라고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기어이 가져온 생각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입금
 지 물품을 보관함에 맡기고 우리의 생명줄처럼 여겨야 한다는 관광증을 세관원에
 게 내밀었다. 도장을 찍기 전 그 세관원은 관광증과 나를 쳐다봤다. 아무런 잘못
 도 없건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침을 꿀꺽 삼켰다. 살짝 웃으며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자 세관원은 웃지도 않고 관광증을 내게 주었다. 관광증에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이란 도장이 붉게 찍혀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똑 같
 은 얼굴의 매서운 눈초리를 한 군인이 있는 검색대를 통과해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색깔있는 점퍼를 입은 남녀 대여섯 명이 쭉 서서 '어서 오십시
 오' 라며 반갑게 인사를 해서 의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대에서 고용한 현대
 직원이라는 것 이었다. 어쩐지 하는 실망에 이어 '반갑습니다' 라는 고음 특유
 의 북한노래가 크게 울려 퍼졌다. 정말 북녘 땅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 십대의 관광버스가 맨 앞에 운전기사를 세워 놓고 쭉 도열한 채 우리를 맞이
 했다. 녹색, 청색, 노란색의 현대 금강산 관광이라 쓰여진 그 버스가 무채색의
 북녘 땅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자유' 라는 단어
 가 떠올랐다.
 
  모두 차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 누굴 찾는다길래 내려가는 사람도 남아있는 우리
 들도 순간 긴장했다. 차창 밖으로 고갤 내밀고 웅성거렸다. 현장에 근무하는 현
 대직원이 아는 사람이라 찾았다는 것을 알고서야 안심을 했다. 관광객 모두가 차
 에 타자 조 순서대로 출발했다.
 
  경직되어 있는 우리 표정이 우스운지 조장 아가씨가 이제 그만 긴장 풀라고 했
 다. 버스 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마음껏 웃고 말도 하란다. 그래도 우린 북한 말
 로 인사를 했던 운전기사가 북한사람인 것 같아 굳어진 표정을 쉽게 풀 수 없었
 고 말도 절제하며 조용히 소곤거렸다. 그러나 연변에서 온, 북한과는 전혀 상관
 없는 현대직원이란 말에 긴장이 풀려 모두 웃고 말았다. 억압이라는 단어의 실체
 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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