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스집 할머니
이 름  김은미 날 짜  2000-05-09 오후 11:43:53 조회수  1005

내용

 김은미(주부, 부천시 상1동 한아름마을)
 
  칠 년 전 내가 살던 곳엔 대문 앞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그 뒤로는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 감나무 아래에 때때로 돗자리를 깔아 놓
 고 앉아있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로 꽂을 피우기도 하였다. 처음엔 우리 집 앞
 에 자리를 피고 있어서 내심 못마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워낙 순박해
 보였고 나역시 아기가 어려 나다닐 수도 없어 심심하던 차라 나중에 합세하게 되
 었다. 애기 업은 앞집 새댁, 저 건넛집 할머니 그렇게 한둘씩 모여 점심 끼니 때
 가 되면 부침개며 고구마 등을 쪄와 같이 먹곤 하였다.
 
  그 중 할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앞니가 거의 빠져 두서너 개 밖에 남지 않았고
 행색도 초라하게 보였다. 다들 그 할머니를 가스집 할머니라고 불렀다. 아들이
 가스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외모와는 다르게 인자하고 고상하
 신 성품을 지니셨다. 젊은 새댁들에게도 언제나 존대를 하셨고 동네 꼬마 아이들
 도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
 
  늦은 봄 어느 날이었다. 작은아이가 밤새 앓았기 때문에 한밤을 꼬박 새우고 아
 침나절 아기 우유를 먹이다 그만 아기와 함께 잠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세 살
 짜리 큰 아이는 엄마를 깨우다 슬그머니 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 버렸고 천방
 지축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내리막길을 내려와 온 동네를 나돌고 다녔다. 잠에
 서 깬 후 깜짝 놀라 아이를 허겁지겁 찾아 다녔는데 우리 아이 곁에는 가스집 할
 머니가 있었다.
  "새댁 좀더 자지 그러우. 작은애기가 아팠다면서 큰애는 내가 봐 줄테니 더 자
 요."
  참으로 고마운 할머니였다.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를 여든 네 살 할머니
 가 한 시간 넘게 쫓아다니신 것이다.
 
  한 달 후에 작은 아이의 돌잔치를 했다. 친척 분들과 회사 분들을 다 치르고
 난 후 음식도 남았고 해서 동네 할머니들을 초대해 점심을 대접했다. 가스집 할
 머니도 오셨다. 그 무렵 할머니 집은 아들이 가스 배달 도중 오토바이 사고가
 나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께 아들의 안부를 묻고 떡을 조
 금 싸 드렸다.
 
  그 후로 며칠 동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려니 생각했
 다. 며칠 지난 오후 늦게 벨소리에 나가보니 할머니였다. 이삼일 남짓 시장에서
 나물을 팔았단다. 아기의 돌 떡값을 주려고 그 연세에 장에 나가 나물 장수를 하
 였다고 한다.
  "아기의 건강을 빌우. 그리고 이건 아기의 가락지라우." 금반지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미안해 차마 받을 수 가 없었지만 그건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많은
 금반지를 받았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반지는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평가를 한 적이 많았다. 행색이
 초라하다고 생김새가 허술하다고 조금 비켜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만
 난 후론 그런 선입관이 바뀌었다. 그 내면의 진실성은 행색과는 무관하다는 걸
 알았다. 가스집 할머니를 생각하면 예전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할머닌 백발
 의 머리에 주름투성이고 옷도 허름하게 입은 가난한 분이었지만 남에게 받은 건
 꼭 갚는 깔끔한 성격이었고 항상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고운 분이
 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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