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재주 한 가지
이 름  정문성 날 짜  2000-05-08 오후 5:25:39 조회수  1001

내용

 정문성(주부, 경기도 부천시 보람마을 아주아파트)
 
  어렸을 때 나는 특별한 재주가 없었다.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학교 다닐 때 특
 활반을 편성하는 날은 늘 고민에 빠지곤 했다. 노래는 거리가 멀어 합창반은 꿈
 꾸지 못했고, 눈사람을 가분수로 밖에 그리지 못하는 미술 실력으로 미술반에 들
 어갈 수도 없었다. 이렇게 밀리고 밀리다 보면 결국 인원수가 모자라는 서예반
 이 고작 내 차례가 되곤 했다. 그래도 그렇게 몇 년을 서예반에 있다보니 그런
 대로 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학교를 졸업하고는 끝이었다. 그리고 서울 사람인 내가 결혼해
 서 인천에서 살게 되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은 늘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고, 아이도 없었던 그 때 남편을 기다리는 밤시간에 시간 보내기 좋은 서
 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서예 학원에 나가겠다는 이야기
 에 남편은 인천 지리도 잘 모른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되지 않는 이
 유에 목숨을 걸고라도 우겼을 일이지만, 너무나 착했던 신혼 시절에 남편 말을
 어길 수 없어 쉽게 포기하게 되었다. 서예를 다시 하는 일은 늘 마음뿐. 연년생
 딸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내 시간을 내서 취미 생활을 한다는 건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그러다 큰 딸애를 유치원에 입학시키던 날 남편 월급 사십만 원에서 거금 오만
 원을 떼어 학원비 삼만 원을 내고, 이만 원으로 동인천 화방에서 재료를 사가지
 고 왔다. 애들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줘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나에게
 서예 공부한답시고 애들 키우는데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 때 남편은 몇날이나 가겠냐며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 하고 싶었던 서예 공부
 를 하게 되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니 좀더
 많은 시간을 내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다 애들이 돌아올 시간에 안 돌아
 오면 애들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하는 일도 생겼지만, 그땐 서예가 왜 그렇게 좋았
 는지 그런 건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예 공부를 하는 동안 여러 가지 일도 있었다. 밤을 새워 준비한 공모전에 연
 이어 몇 년씩 떨어졌을 때의 허탈감, 부천으로 이사하여 인천에 있는 서실까지
 다녀야 하는 어려움, 전시회 때 드는 만만치 않은 비용 등. 이제는 공부를 그만
 둘까 하는 갈등도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 내세울 것 하나 없던 나에게 15년이란 긴 시간으로 만들
 어진 작은 재주 하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긴 세월 동안 열심히 한 가지
 일에 몰두한 덕에 지금 나는 어디에 명함도 못 내민다는 40이 훌쩍 넘은 나이에
 중학교 서예 강사로 일하고 있다.
 
  사춘기 학생들, 30대 젊은 엄마들과 만나기도 하고,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며 공부하고 있다. 일주일 내내 수업에 쫓겨 김치 한 번 제대로 담
 그지 못할 때도 많지만 주위의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
 에게도 한 가지 재주가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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