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소고기국
이 름  김혜주 날 짜  2000-04-02 오후 5:10:42 조회수  1189

내용

 김혜주(주부, 부천시 원미구 상1동 반달마을)
 
  아버지는 내가 열 살 때 폐결핵으로 쓰러지셔서 이십 년을 앓다 돌아가셨다.
 원래 넉넉하지 않은 집안이었는데, 아버지 병시중으로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자주 소고기국을 드셨다. 그때는 다들 어렵던 시절이라 보통 사람들
 은 자주 소고기국을 먹을 수가 없었고,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집은 말할 것도 없
 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이 잘 드셔야 낫는 병이고 보니, 유일한 영양식으로
 소고기국을 자주 드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도축장까지 가서 고기를 싸게 사오셨다. 큰 냄비로 하나 가득 국을 끓
 인 후 끼니때마다 아버지께만 한 그릇씩 드렸다.
  매번 열 알이 넘는 약을 드시던 아버지는 위가 좋지 않으셨다. 그래서 소화되
 기 쉽게 밥 한 숟가락도 삼십 번 이상을 씹은 다음 삼키셨는데, 씹는 소리가 특
 이했다. 고기를 드실 때면 더 많이 씹었는데, 아버지의 씹는 소리를 들으며 우
 리들은 속으로 침만 삼켰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머니께나 우리에게 한 그
 릇 같이 먹자고 하신 적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러 부엌에 들어가면 큰 냄비에 담긴 소고기국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
 려웠다. 식어서 벌건 기름이 굳어 있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투명한 힘
 줄이 달린 걸로 가장 큰 건더기 하나를 얼른 입에 넣고는 설거지하는 동안 꼭
 꼭 씹어먹곤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부르시면 얼른 그것을 삼켜버려
 야 했다. 그럴 때면 큰 덩어리를 삼키기도 고역이었지만, 미처 씹지 못하고 삼켜
 버린 그 고기가 너무나 아까웠다.
 
  지금은 다들 잘 사는 시대가 됐고 꽃게니 생선회니 좋은 음식이 많아, 소고기
 는 오히려 보통의 반찬거리가 됐다. 몇 년 전 옆집 아줌마가 자기네 집은 국
 을 끓이면 다들 국물만 먹고 고기 건더기는 버린다고 하는 말에 나는 너무 놀랐
 다. 요즘은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나도 과거에 비해 넉넉하게 살고 이런 저런 먹거리를 즐기게 됐지만, 아직도 소
 고기국은 나에게 고급 음식이다. 무슨 날이거나 누가 오시거나 하면 끓여 먹는
 다. 그리고 아이들이 남긴 국그릇의 마지막 건더기까지 알뜰하게 건져 먹는
 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고 또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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