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소주병과 박카스병
이 름  신 옥 날 짜  2000-03-30 오전 6:52:56 조회수  1019

내용

 
 신 옥(주부, 부천시, 한아름 동원아파트)
 
  결혼 15년 동안 고추장 된장 참기름을 친정에서 가져다 먹고 있다. 떨어지면 담
 아야지 하는데 그때쯤이면 친정엄마가 미리 알고 챙겨 보내주신다. 일곱 자식들
 에게 소주병에 가득 담아 나누어 주시느라 박카스병에 조금 담겨진 친정 엄마의
 참기름 병을 볼 때마다 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잊곤 했
 다. 엄마의 고추장 된장 맛은 누구나 칭찬하는 솜씨여서 때로는 은근히 기다리기
 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광주를 갔다온 오빠가 고추장과 참기름을 가져왔다. 암으로 투
 병중인 친정 엄마가 담아서 자식들에게 또 보내신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 들기
 전에 화가 났다. 건강하셨을 때 담아주신 것이라면 예전처럼 죄송해하면서도 좋
 아했을 것이다. 암으로 힘들게 투병 중인데도 자식들 신세 안 지고 집안일 다 하
 시는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체한 것처럼 늘 답답해 있었다. 난 속이 상
 해 고추장 보따리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작년에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안되어 엄마는 외출도 힘든 때였다. 그런데 방
 앗간 방에 누워, 혹시 수입깨나 불순물을 섞을까봐 지켜서 찬 참기름을 보냈을
 때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군다나 고추 100근을 닦아서 빻아 보냈을 땐 온몸에
 힘이 빠져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자신은 단 한 번도 내세우지 않은 채 자식 사
 랑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엄마라지만 말기 암 환자로선 치명적인 무리인 것이다.
 
  그때 난 전화로 엄마를 몰아세웠다. 그것은 잘한 일이 아니다. 자식 위한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엄마 자신을 위해 살라며 생전 처음으로 목소리 높여 따지다
 가 끝내 울고 말았다. 다음에 또 보내면 아무리 힘들게 만들었어도 난 안 먹고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랬는데도 고추장 참기름을 또 보내신 것
 이다. 이틀이 지나자 고추장이 상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힘들게 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 베란다에 던져 놓았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나도록 전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며칠씩이나 전
 화를 안하자 엄마는 궁금해서 전화를 하셨다. 엄마가 약속을 안 지켜서 고추장
 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쌀쌀맞게 말했다. 너희들 맛있게 먹을걸 생각하고 담근
 것이니 이번 한 번만 먹어라. 다시는 안 할게. 엄마가 도리어 내게 사정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도 난 지나친 사랑은 부담이라는 말도 있다는 가슴아픈 소리를 일
 부러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넘치는 사랑을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고 말
 한 난 너무 죄송했다.
 
  다음날 엄마는 이젠 아파서도 더 못하겠다, 약속한다는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10여 일 만에 엄마의 그 소중한 고추장을 통속에 꼭꼭 눌러 담으면서 엄마의 사
 랑도 함께 담았다. 나도 엄마의 사랑만큼 달콤하고 색깔이 고운 고추장을 훗날
 내 아이들에게 담가 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소주병과 박카스병의
 차이처럼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그렇게 반비례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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