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버지의 뒷모습
이 름  김동인 날 짜  2000-03-17 오후 4:34:08 조회수  1363

내용

 부천정보산업고 교사 김동인
 
  수평선 너머에 솜털 같은 퍼런 구름이 펼쳐진 아담한 섬 마을 그 섬 마을 사람
 들의 삶과 의식은 곧 바다와 연관되어있다. 칡덩굴 같은 끈질긴 삶에 대한 연민
 으로 모진 폭풍우와 거센 파도를 이겨내 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 섬에서 나
 는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60년대는 지금과는 무척 다른 생활 모습을 가졌다. 단순하
 게 과학적 문명의 발달로 인한 생활 문화의 변화가 논점의 대상이 아니라 헐벗
 지 않고 배부르게 먹고자 하는 처절한 생존의 문제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한
 다.
  그래서 잘 가꾸고자 끊임없이 양분을 주는 요즘의 어린 시절과는 다른, 길거리
 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면서 혹독한 가뭄에도 스스로 물을 찾고 양분을 찾아가는
 들풀 같은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섬에서의 아이들은 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섬이라는 환경적 배경에서는
 하나의 노동력이었다. 이러한 생활상 때문에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게질
 을 하게되었으며, 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나서야 했다.
  그 즈음 집에서 내가 맡아서 해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내가 자의적으로 선택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닌 아버지의 의지에 의해서 가족 각자에 분담된 일들이었
 다. 바다 일이라는 연속성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내 몫
 의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는 여지없이 아버지의 근엄하고 강한 질책이 이어졌
 다.
  그 대표적인 일이 소에 풀을 먹이는 일이다. 아침과 저녁 두 번에 걸쳐 소에게
 풀을 먹이는 일이 나에게 배당된 일인데, 가령 소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있지
 않으면 어김없는 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섬에서 소에
 게 먹일 풀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매일 소 풀을 배불리 먹일 수는 없었다.
  "소의 배꾸리가 달라 붙어있구나 소의 배가 부를 때 까지 풀을 먹여오너라" 아
 버지의 이 한마디는 결코 거역할 수 없는 권위와 위엄이 있다.
  이런 아버지의 권위 앞에서 얼어붙은 나는 한 밤중을 가리지 않고 소에게 풀을
 먹여야 했다. 그러나 그 소에게 내가 가지고 싶었던 시간을 낭비하거나 그즈음
 내가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를 빼앗아 가는 것이 싫을 수 밖에 없었다.
  마을 앞에는 바닷가가 있고 소금기 절인 바닷물에서 양분을 뽑아먹고 사는 식물
 이 바다 모래나 조약돌 사이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평상시 굶주리지 않으면 그
 바다 풀을 소가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근엄한 모습과 질책이 무서
 워 내가 찾아낸 것이 적은 고생으로 많은 효과를 노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
 다.
  소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굶긴 후 그 바다 풀을 먹인다. 이미 배고픔에 지친 소
 는 그 짠 바다 풀을 먹게된다. 그 바다 풀을 조금만 먹어도 소는 양수기에서 물
 을 퍼올리듯 양동이 서너개 정도에 해당하는 물을 벌컥벌컥 단숨에 마셔버린다.
 바다 풀이 워낙 짜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의 잔등 양옆은 커다란 양동이를 달아
 놓듯 한껏 부풀어 있다. 이런 이유로 소가 걸어가면 마치 출렁이는 파도같은 물
 소리가 소 배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다음날 그 소는 어김없이 설사를 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소를 배불
 리 먹였으니 살도 찌고 논과 밭도 잘 갈아야 되는데 소는 점점 야위워만간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집 아저씨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되었다." 잘 먹이
 는데도 어디가 아픈지 설사만하고 자꾸 살이 빠지네. 약을 먹여도 소용없어" 소
 의 이런 증상에 원인은 내가 제공했지만 아버지에게는 말 할 수 없었다. 내게 떨
 어질 불호령과 떡 벌어진 어깨에서 내리치는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무서웠기 때
 문이다.
  그러나 소에게는 정말 미안했다. 아침 저녁으로 소에게 풀을 먹이는 일들이 소
 와 정이 들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었던 모양이다.
  소 고삐를 쥐고 있으나 이미 뜯어먹어 바리깡으로 깍은 머리카락처럼 잘 다듬어
 진 길가 풀 옆에는 밭 작물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가끔 소는 나의 눈치를 살
 펴서 내가 한 눈을 팔 때는 여지없이 밭작물을 훔쳐먹곤 한다. 그러면 내 손에
 들려진 고삐가 소의 잔등을 내리치지만 그 큰 눈망울을 굴려가며 또 기회를 엿보
 곤 했던 소였다.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소를 정말 괴롭힌 것은 또래의 아이들과 소
 싸움을 시키고 그 결과에 따라 소가 받는 벌이다.
  소싸움을 해서 각자의 소에 힘센 순위를 정하게 된다. 순위가 높은 소는 좋은
 풀밭을 선택하고 순위가 처진 소는 거의 황토흙 밭에 듬성듬성한 풀밭에서 굶주
 려야 한다. 순위를 정하는 소싸움 날이 정해지면 며칠 전부터 설 자란 고구마
 나, 옥수수를 밭에서 파헤치거나 꺾어서 소에게 가져다 잘 먹여둔다.
  "고구마와 옥수수를 밭에서 누군가가 훔쳐갔는지 밭이 엉망이 되어있어" 소싸움
 을 앞둔 날이면 아버지의 화난 표정과 푸념을 들어야 한다. 물론 그 범인이 나라
 는 사실은 모른채..
  며칠전부터 잘 먹여 힘을 비축한 소들이 동네어귀의 주인없는 풀밭에 모이면 아
 이들은 긴장을 하게된다. 그도 그럴것이 패배는 곧 자기집 소의 배고픔으로 이어
 지기 때문이다.
  뒷다리로 힘차게 황토흙을 차고 앞다리로는 황토흙을 긁으면서 소가 흰 눈자위
 를 드러내놓고 고개를 숙이면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서로의 싸울
 의지가 확인되면 황토흙을 박차고 뿔이 달린 머리 위쪽을 상대방 소에게 들이받
 는다. 황토흙 먼지 흩날리며 한참을 밀고 당기다가 뒤통수를 내보이며 줄행랑
 을 놓는 소가 싸움에 지게된다.
  이런 싸움을 위해 나는 며칠 전부터 공을 들여왔다. 그때 당시 사람도 먹기 힘
 든 콩과 고구마 옥수수 등을 뒤주나, 밭에서 훔쳐서 마구 먹였던 것이다. 싸울
 소가 정해지면 소 주인은 고삐를 끌어 서로 마주보게 한다. 그러나 싸우기도 전
 에 한쪽에서 머리를 돌려 꽁무니를 내보이면 뿔을 들이받는 싸움은 일어나지 않
 는다. 꽁무니를 보인 소가 패배하게 되는 경우다 이때 패배한 소는 주인에게 그
 야말로 비참하게 두들겨 맞아야 한다.
  싸움도 하지 않고 패배했다는 비통이 모조리 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소의 고
 삐를 짧게 나무에 매고는 작대기와 돌로 마구 때린다. 놀란 소는 입과 코에 거품
 을 물고는 흰 눈자위를 드러내놓은 채 잔뜩 겁에 질려 주인의 분노에 버둥거린
 다.
  그 패한 소는 며칠동안 바다 풀만 먹으면서 설사와 배고픔의 고통을 당해야 한
 다. 어느 늦 가을날이었다. 그날도 동네 또래의 아이들과 소싸움이 약속된 날이
 었다. 미리 훔쳐놓은 귀한 곡물을 소에게 아낌없이 먹이고는 소싸움에 대비했
 다.
  우리 집 소와 싸울 상대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 보였다. 잘 싸워주기만 바랬던
 나는 힘차게 소의 고삐를 당겨 상대 소에게 들이밀었다. 나의 전투 의욕 이상으
 로 우리 집 소도 땅을 박차더니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한참은 우리 소가 상대 소
 를 밀어내고 있었다. 싸움에서 이기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집 소가
 꽁무니를 빼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리 집 소의 두 개의 뿔 중에 하나가 부러
 진 것이다. 피가 소의 얼굴위로 흘렀다. 상대 소는 입에 거품을 품고 의기 양양
 하게 우리 소의 뒤를 쫒아간다. 그러나 나에게는 소의 이런 아픔보다는 내가 아
 버지에게 당할 일들이 먼저 걱정이 되었다.
  그날 저녁 소를 몰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소뿔이 빠진 이유를 설
 명해야 했다. "쓸데없는 일에 소뿔을 없앴구나 소뿔이 없으면 소값이 반으로 줄
 어드는데 어떤 벌을 받고 싶니?" 결국 아버지의 억센 손에 이끌린 나는 집 뒤에
 있는 저수지로 떠밀렸다. 수영도 제대로 못한 나는 늦가을의 찬물을 많이 먹고
 먹은 물들을 구역질 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손에 의해 건져졌다.
  나에게 그렇게 강하고 엄한 아버지가 처음으로 연약하게 보인 것은 내가 고등학
 교 다닐 때였다. 그 섬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나는 뭍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
 하게 된다. 그 때 당시 내가 집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
 가 가고싶은 학교도 있을 법 한데 내 생각을 아버지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내 의견을 들어줄 분도 아니려니와 진지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네가 뭘 안
 다고" 그 한마디의 압축으로 내 입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학교의 선택과 결정은 모두 아버지가 했다. 집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자취를 하면서 학교 다니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특히 나에게 너무나 큰 장벽 같은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일주일도 못되어 짐을 다시 싸들고 집으로 와버렸다. 아버지
 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다음날 다시 짐을 챙겨서 학교에 가자고 하셨다.
 3월초 꽃샘추위에 진눈개비가 내리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날 버스를 타고 그 소
 도시로 향했다. 바다에 육지가 비죽이 내밀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소도시
 의 지형적인 이유로 배를 타고 가면 금방 가는 거리이나 배를 못타면 세시간은
 족히 버스를 타고 빙 돌아가야 그 소도시에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세찬 바람 때문에 배가 뜨지 못했다. 뜨지 못하는 배를 여객 대합실에서 기다리
 면서 아버지는 호빵을 두어개 사왔다.
  바다에서만 평생을 살아오신 당신의 삶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는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손, 이미 갈라지고 부르터 각질화 되어있는 그 손으로 호빵을 내게
 주었다. 왠지 허전해 보이면서도 쓸쓸해 보이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날 처
 음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그 무거운 짐 가방을 매고는 다시 그 소도시를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학교로 갔다.
  담임선생님 앞에서 마치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굽신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서 그처럼 크거나 강한 아버지가 아니라 너무나 연약하고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
 을 그날 처음으로 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했었고 그 아픔
 을 이해할 수 있었던 나이에서는 아버지의 그 연약한 모습이 나를 서글프게 했
 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의 그 강하고 큰 힘이 그리워진다.
  자식을 위해서 당신이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악착같이 생활을 하였던 아버
 지, 자식들을 그 섬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손이 더덕손이 되도록 거센 파도의 풍
 상을 견디었던 아버지, 자식을 강하게 키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 그래
 서 아버지의 자식들은 지금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 성실하게 자기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큰 힘과 장벽같이 강한 신념이 우리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그 큰 힘을 지금 다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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