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교 급식의 문제점
이 름  유시주 날 짜  2000-03-13 오전 10:59:57 조회수  1316

내용

 아이들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유시주(인천생협 조합원)
 
  우리 셋째 언니는 남자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키운다. 2, 3년전 큰애가 초등학
 교 6학년 때인가 "너무나 기쁜 소식이 있다."며 언니가 전화를 해 왔다. 학교에
 서 단체급식이 시작돼 이제 도시락 걱정을 안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날의 통
 화는 도시락에 대한 우리들의 추억을 회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는데, 나는 전
 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가슴이 저릿했다.
 
  우리 집은 바늘과 고무줄에서 생선과 채소까지를 다 파는 동네 구멍가게를 오랫
 동안 했었다. 사립학교 교사인 아버지 월급으로는 여섯 남매를 모두 공부시키기
 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원래 성격이 남성적이라 집안 살림에 통 소질이
 없었던 어머니는 가게 일까지 겹쳐 우리들 도시락에는 거의 신경을 안 썼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밥도 알아서 챙겨 먹고, 도시락도 각자 알아서 챙겨 다녔
 다. 김치 하나 달랑 싸가지고 다니기 일쑤였던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멸치볶음이
 며 계란말이 같은 아기자기한 반찬들로 채워진 친구들의 도시락 찬통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도시락용으로 반찬을 따로 만들어 주실 때가 가끔 있었는데,
 만들었다 하면 어묵(오뎅) 조림이었다. 가게에서 팔다 남은 상하기 직전의 어묵
 을 물에 씻어 간장에 조린 것이었다. 그때는 방부제를 안 썼는지 한 이틀만 지나
 면 어묵 표면이 끈적끈적하게 변했다. 옛날엔 그렇게 싫던, 콤콤한 냄새가 나던
 그 어묵 조림이 그날은 왜 그리도 그립던지.
 
  두어 달 전, 언니는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사립 여중고에서 시간제 부업을 시
 작했다. 점심 시간에 식당에서 배식을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얼
 마 되지 않아 언니가 또 도시락 문제로 전화를 했다. 일을 하면서 학교 급식의
 실상을 목격하곤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 실상의 일단이 얼마 전 보도되었으므로 언니가 전한 더 시시콜콜한 이야기
 는 그만 접어 두련다. 단체 급식 납품업체들이 전국의 초등학교에 밀도축된 저
 질 쇠고기를 중등급 한우로 속여 공급했다는, 끔찍하고 아찔한 그 보도 말이다.
 
  상하기 직전의 어묵으로 만든 반찬을 싸들고 다녔지만 나는 오늘 오히려 그것
 을 그리워한다. 새벽에 도매시장에 가서 생선이며 채소를 떼다가 고무 함지(다
 라)에 이고 와서 가게에 내다 팔았던 어머니의 고단한 삶…. 어린 마음으로는 읽
 을 수 없었던, 어묵 조림에 녹아든 그 정성과 사랑을 이제라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정성과 사랑으로 자란다. 나의 어묵 조림은 식품
 영양학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
 간을 인간답게 성장시키는 올바른 먹을거리라는 측면에서는 제왕의 반찬에 뒤지
 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초 식품 5군을 골고루 배치한' 단체 급식을 먹고 자란 우리 아이들
 은 나중에 무엇을 추억할 것인지, 어디서 자신들을 키운 정성과 사랑의 향내를
 확인할지, 생각할수록 슬프다. 혹시 '어른들이 우리를 속여 폐사한 젖소 고기를
 먹였었지.' 하며, '세상은 속고 속이는 곳, 역시 돈이 최고야.'는 결론을 내리지
 는 않을까.
 
  학교 급식이 저질 육류와 농약 채소, 방부제와 색소 투성이인 가공 식품으로 채
 워지고, 그 위에 인공 조미료까지 듬뿍 뿌리게 된 것은 가장 싼 가격을 써넣는
 업체를 납품업체로 선정하는 '최저 입찰제' 탓이 크다고 한다.
 
  이번에 구속된 업자가 솔직히 고백했듯이 일단 낙찰을 받고 보자는 심사로 터무
 니없이 싼 가격을 제시하고, 그에 맞추어 이윤을 확보하려니 저질 식품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체 급식이 1, 2년 안에 전국의 모든 초·중·고로 확대될
 것이라고 하는데 관련 부처인 교육부나 식품 의약품 안전청에는 학교 급식의 안
 전성을 책임지는 부서 하나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고, 관련 비리는 계속 터져
 나오는데 이렇다 할 제도 개선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라고들 외친다. 진정으로 더 밝고 아름다운 미래
 를 원한다면 갈구하는 그만큼 사랑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학교 급식을 환경 농
 업과 연계시키는 구상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 않겠다. 최소한 해로운 음식을 막
 을 수 있는 장치만이라도 마련해 주길 정부 당국에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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