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여성의 몸에 대한 일상화된 테러
이 름  배경내 날 짜  2000-03-13 오전 10:26:44 조회수  999

내용

  유엔은 "공적 혹은 사적 삶의 영역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성적
 (sexual) 혹은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수 있는 성에 기반한(gender-
 based) 모든 형태의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한다. 여성에게 가해
 지는 폭력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여성의 존엄성을 총체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에
 서 여성 인권을 위협하는 최대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여성들은 일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안전한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다. 거리뿐
 아니라 가정, 학교, 직장, 사이버 공간 등 일상의 곳곳에서 성희롱, 강간, 구타
 등의 폭력에 직면한다. 대개 이러한 폭력은 가장, 교수, 고용주, 어른 등 남성들
 이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와 권 력을 이용하여 가하는 것이므로, 종속적 관계
 에 놓인 여성들은 이에 저항하기 힘들다.
 
  우리의 경우, 최근 10년간 성폭력특별법에서부터 가정폭력방지법, 남녀고용평등
 법, 지난 해 제정된 남녀차별금지법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
 기 위한 법적 장치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법과 현실의 간극은 여전
 히 크다.
 
  매매춘(賣買春) 역시 여성에 대한 폭력의 또다른 얼굴이다. 매매춘의 과정은
 돈의 힘으로 일시적으로나마 남성이 여성의 몸에 대한 독점적인 사용권을 소유하
 는 과정이므로, 매춘 여성은 흔히 매춘 남성의 폭력의 대상이 된다.
 
  또 매춘여성들의 상당수가 과거 강간과 학대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 동기
 가 무엇이든 일단 매매춘 구조 속에 빠져들고 나면 매춘 여성이 업주나 중간 착
 취자 등에 의한 폭력과 착취의 대상으로 노예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정부의 지원과 육성 정책 하에 형성된 기지촌의 존재, 외화 획득이라는 미
 명 하에 관광 산업을 육성하면서 매춘 코스를 집어넣는 관행을 묵인해온 정부의
 태도는 국가 권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조하거나 오히려 지원하고 있음을 보
 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무력 갈등 하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더욱 파괴적이다. 종군위
 안부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 무력 갈등 하에서 여성들은 조직적 강간, 성노예
 (sexual slave), 성고문, 강제불임, 강제임신 등 성적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동
 티모르, 르완다, 구 유고, 버마, 코스보 등 대다수 무력 갈등 상황 하에서 공통
 적으로 발견된 이러한 현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하나의 전술로서 활용하고 있
 음을 말해준다.
 
  게이 맥두걸 유엔인권소위원회 특별 보고관은 그 이유로 △적들을 극도의 공포
 에 떨도록 만들고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공격함으로써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으며 △강제 임신 등을 통해 인종 청소의 효과까지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
 했다. 또한 여성의 몸을 하나의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남성 중심적 전쟁 질서도
 한 몫 한다.
 
  제주 4·3항쟁과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여성들이 성고문과 강간 등 폭력의 희생
 자가 되었던 사례는 타민족이 아닌 국가권력에 의해 가해진 대표적 테러 행위이
 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폭력행위가 처벌된 사례는 하나도 없다. 여성에 대
 한 폭력을 반인도적 범죄 행위이자 인권 침해로 간주하지 않고, 여성과 그 공동
 체의 수치로만 여기는 사회적 태도가 여성에 대한 폭력에 침묵하도록 만들기 때
 문이다. 무력 갈등이 종식된 이후에도 피해 여성들이 일생을 통해 고통을 겪어
 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성의 불평등, 여성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바
 라보는 관행을 극복하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노력 없이 폭력으로부터 해방된 여성
 의 삶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권하루 소식> 2000년 3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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